金珖燮
1904-09-22 ~ 1977-05-23·현대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광섭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함경북도 경성(鏡城) 사람이다. 중동학교(中東學校)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조도전대학(早稻田大學)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시인(詩人)이 되어 해외문학(海外文學)·극예술연구회(劇藝術硏究會)의 동인으로 시작(詩作)과 함께 해외문학 번역 소개와 신극운동에 참여하였고, 『시원(詩苑)』의 동인으로 활동하였다. 1935년에는 유치진(柳致眞)의 작품을 공연하려다가 일제 경찰에 구금되기도 하였다. 1933년 4월부터 모교인 중동중학교(中東中學校)에 영어교사로 근무하면서 1940년까지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수업시간에도 일제의 민족차별정책, 조선어말살정책, 동아일보(東亞日報)·조선일보(朝鮮日報) 폐간 등 언론탄압정책을 비판하여 학생들의 독립사상을 앙양하였다. 1941년 2월 21일 이로 인하여 일제 경찰에 붙잡혀, 잔혹한 고문을 당하고, 1942년 9월에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인정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1990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본관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습니다
이 인물의 본관을 직접 기재한 기록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