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光熙
1892-10-05 ~ 1968-01-14·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광희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함북 학성(鶴城) 사람이다. 1919년에 해삼위(海蔘威)로 망명하였다가 상해(上海)로 이주하였으며 동년 7월에는 다시 연해주(沿海州)로 가서 농장과 학교를 설립하였다. 1922년 7월 14일에는 고려혁명위원회 해외 조직부장으로 활약하는 한편, 연해주에서 민족혁명단체의 통일에 전력을 다하였다. 동년 11월에는 천도교(天道敎) 신·구파간의 내분을 수습하기 위하여 신파의 포조(浦潮) 대표위원으로 선임되어 협의를 성공시키기도 하였다. 1926년에는 양기탁(梁起鐸)을 위시해서 고활신(高豁信)·현정경(玄正卿)·오동진(吳東振) 등과 천도교 혁신파 김봉국(金鳳國)·이동구(李東求)·송헌(宋憲), 노령에서 온 공산주의자 최소수(崔素水)·이규풍(李奎豊) 등이 모여 길림성(吉林省) 영남(嶺南)호텔에서 조직한 고려혁명당(高麗革命黨)의 간부로서 활약하였다. 1930년에는 한족총연합회(韓族總聯合會)의 지도당으로 조직된 신한농민당(新韓農民黨)의 위원장으로 일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3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1963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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