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敎爽
1889-01-15 ~ 1946-11-12·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교상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그는 일찍부터 독립운동을 위해서 이재인(李載仁)과 더불어 독립에 관한 문서를 인쇄 배포하고자 계획하였으며, 1920년 4월(음)부터 동년 6월(음)까지 수차 광주군 이재인·안교동(安敎童)의 집에서 대한독립운동을 위하여 생명과 재산을 걸고 대한독립단 중앙부의 명에 복종할 것을 맹세함이란 내용이 기재되어 있는 서약서 약 1천매를 비롯, 암살단 취지서 3천 매, 대한독립단 지방부 시행규령 80권, 선포문 1천 매, 대한독립단 경무국 시행규령 340권, 대한독립단 취지서, 포고서 등을 인쇄하여 독립운동에 헌신하던 중 일경에 탐지되어 체포되었다. 이에 1921년 7월 15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90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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