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敎元
(1887) ~ 1920-11-15·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교원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평북 정주(定州) 사람이다. 서간도지역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10년을 전후하여 해외에 독립운동기지를 건설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독립운동가들 사이에 활발히 전개되었다. 이에 따라 전국민은 무장세력의 양성과 군비를 갖추면서 독립운동의 기회를 기다려야 한다는 전제 아래 만주에 독립운동기지를 건설하게 되었다. 이러한 기반 아래 1919년 3·1운동 이후 서간도 지역에서는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 등 다수의 독립운동단체들이 조직되어 만주지역에서 뿐만 아니라 국내 북부지역에도 진입하여 활발한 대일투쟁을 전개하였다. 김교원은 이 시기 봉천성(奉天省) 환인현(桓仁縣) 오후우모(五後牛毛)에서 상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연락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다가, 1920년 11월 15일 일본군에 체포되어 이붕전자(二棚甸子)에서 피살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8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1998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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