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九植
1881-09-13 ~ 1947-01-22·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구식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기도 용인(龍仁) 사람이다. 용인군 일대의 3·1독립운동은 대규모의 운동으로 발전하지는 못하였으나 각 면 각 리에서 만세시위가 벌여졌다. 그는 1919년 당시 용인군 기흥면 하갈리(器興面 下葛里) 사람으로, 용인군 일대에서도 만세시위가 각 면·리에서 일어나자 자신이 살던 하갈리에서 만세운동을 일으켰다. 그는 3월 30일 하갈리 강가에서 주동이 되어 수십 명의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시위운동을 벌였으며 이로 말미암아 이해 4월 일경에 붙잡혔다. 그리하여 이해 5월 1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개월형을 선고받고 6월 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항고하였으나 기각되었고 이해 7월 10일 고등법원에서도 기각,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1990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본관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습니다
이 인물의 본관을 직접 기재한 기록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