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龜鎭
1874-03-11 ~ 1943-05-01·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구진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북 성주군(星州郡) 성주 읍내 시장에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19년 3월 민족의 독립을 요구하는 만세시위가 전국에서 일어나자 성주군의 유림들도 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이때 기독교 측에서도 장날을 기해 만세시위를 준비하고 있었다. 양측은 3월 말에 공동전선을 펴기로 협의하고 그날 사용할 태극기의 제작과 선언서를 준비하였다. 4월 2일 성주읍 장날 주도 인물들은 준비물을 숨겨 시장으로 모였다. 오후 1시경이 되자 성주면(星州面) 경산동(京山洞) 관제묘(關帝廟) 뒷산에서 기독교도들이 태극기를 높이 들고 성주읍 시장을 향하여 독립만세를 외쳤다. 시장 중앙에 모였던 유림측도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호응하였다. 일제 경찰이 주도 인물을 체포하여 경찰서로 끌고 가자 3,000여 명의 시위대는 만세를 부르며 이들의 석방을 요구하였다. 해산을 종용하는 경찰의 시도는 무시되고 만세의 함성은 높아 가고 군중들의 의기는 짙어만 갔다. 당황한 경찰은 발포하기 시작하였고 군중들은 일시 뒤로 물러났다가 오후 10시까지 시위를 계속했다. 이 날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던 김구진은 체포되어 1919년 4월 2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6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06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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