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國先
1897-02-22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국선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평안북도(平安北道) 의주군(義州郡) 고령삭면(古寜朔面) 출신으로 평안북도 접경 지역에서 활동했다. 1920년 최시흥(崔時興) 등이 조직한 무장투쟁 단체인 천마산대에 참여했다. 천마산대는 평안북도를 근거지로 의성‧창성‧구성 지역 일대에서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했다. 1920년 천마산대 동지 20명과 함께 창성군(昌城郡) 서흥동(瑞興洞)에서 화승총과 곤봉으로 군사훈련을 받으며 무장투쟁을 준비했다. 같은 해 4월 26일 한성호(韓成浩)‧김옥선(金玉善)‧최의순(崔義淳) 등과 화승총으로 무장하고 구성군(龜城郡) 천마면(天摩面) 연창동(延昌洞)에서 독립운동자금 150원을 모집했다. 다음날 같은 마을 김응구(金應龜)에게 현금 80원을 모집하고 군자금 제공 승낙서를 받았다. 그날 밤 유한진(柳漢珍)에게 군자금 480원 제공의 승낙서를 받았다. 같은 해 5월 16일 초직령(草直嶺) 산속에서 최시흥 이하 천마산대 대원들과 식지(食指)를 끊고 혈서(血書)로 조국이 독립될 때까지 투쟁하기로 서약했다. 1920년 6월 29일 최시흥의 지휘하에 천마산대 대원 20명과 함께 일제 경찰과 교전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한성호‧김옥선 등과 더불어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1920년 8월 3일 평양지방법원 신의주지청에서 ‘강도‧제령(制令) 제7호 위반’등으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고 경성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22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22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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