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郡石
1890-09-05 ~ 1967-03-02·일제강점기
이명·자·호 金軍植, 金君植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군석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북 의성(義城) 사람이다. 1919년 3월 18일 경북 의성군 의성장터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의성군 소문면(召文面) 대리동(大里洞) 교회 영수인 박낙현(朴洛鉉)과 대구 성경학교(聖經學校) 학생 윤영주(尹營柱)는 3월 18일 의성읍 장날에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뜻을 모았다. 이들은 각지의 동지를 규합하는 한편 태극기 100여 개를 만들고, 대한 독립만세라고 크게 쓴 기를 제작하는 등 거사를 준비하였다. 그런데 거사 전날인 3월 17일 만세시위 계획은 일경에 사전에 탐지되었고, 일경은 한층 삼엄한 경계를 주도 인사들은 3월 18일 장터로 잠입하여 거사를 강행하였다. 오후 2시, 주도자들은 시장에 모인 군중들에게 몰래 감춰 가지고 온 태극기를 나눠주었다. 그리고 박낙현이 독립만세를 선창하자 시위군중도 이에 호응하며 독립만세를 고창하고, 시내로 행진하였다. 김군석은 이때 솔선하여 군중의 선두에 서서 태극기를 흔들며 시위군중을 주도해 갔다. 시위대의 선두에 서서 활약하던 김군석은 현장에서 일경에 붙잡혀, 이 해 4월 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으로 징역 6월을 받고 공소하였으나, 같은 해 5월 22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9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99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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