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權一
1924-01-20 ~ 미상·현대
이명·자·호 金山昭雄, 金源一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권일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42년 함북 길주군(吉州郡)에서 길주공립농업실천학교(吉州公立農業實踐學校) 재학 중에 학우들과 독립운동 방법을 협의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길주공립농업실천학교 학생 김동철(金東哲)은 1940년 12월경부터 1942년 3월까지 기숙사에서 동교생 원원영언(元原英彦) 등과 자주 회합하면서 독립 방법을 협의하였다. 그는 4월 일본 도쿄(東京)로 유학한 뒤에도, 재일 한국인 유학생들과 수시로 회합하면서, "전쟁의 과정에서 일본의 국력이 쇠퇴한 기회를 타서 조선의 독립을 성취하자, 일본의 조선 통치는 전적으로 조선인을 노예화시키는 데 있다"는 등 반일 연대의식을 강화하였다. 또한, 길주공립농업실천학교 학생들과도 연계하여 일본 내 항일 학생운동의 동태와 방향, 교육자료 등을 비밀리에 연락하며 독립의식을 고취하다가 일본에서 체포되었다. 이 사건으로 길주공립농업실천학교 내에 비밀 독서 모임도 발각되어, 김원일 등 18명의 학생이 1942년 12월 검거되었다. 김원일은 1944년 10월 21일 청진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및 육해군형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고 청진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4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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