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根培
1921-07-07 ~ 1994-01-31·현대
이명·자·호 金海根培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근배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강원도 홍천(洪川) 사람이다. 대구사범학교 재학중인 1940년 11월 23일에 그는 동교생 박효준(朴孝濬)·강두안(姜斗安)·유흥수(柳興洙) 등과 함께 당시 대구 봉산정 소재 이태길(李泰吉)의 하숙집에 모여 항일학생결사 문예부(文藝部)를 조직하였다. 문예부는 표면상으로는 문예활동을 표방하면서 민족의식의 고양과 단결을 도모하여 궁극적으로 독립에 목적을 둔 결사였다. 그리하여 이들은 동지포섭과 비밀엄수 및 매주 토요일 작품감상 등을 운동방침으로 정하고 1940년 11월부터 다음해 3월까지 약 9회의 모임을 가졌다. 그리고 1941년 3월에 그는 박효준·문홍의(文洪義) 등과 함께 부원의 작품을 편집하여 기관지인 〈학생〉을 발간하여 부원들에게 배부하였다. 그러던 중 문예부원 가운데 상급생(8회)들이 졸업을 하게되자 그와 10회·11회 학생들은 박효준(8회)을 중심으로 문예부활동을 계속하였다. 그런데 1941년 7월 대구사범학교 윤독회의 간행물인 〈반딧불〉이 일경의 손에 들어가게 됨으로써 대구사범학교 비밀결사의 전모가 드러나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그도 일경에 붙잡혔으며 그후 2년여 동안 혹독한 고문을 당하다가 1943년 11월에 대전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 6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수여하였다.
1990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본관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습니다
이 인물의 본관을 직접 기재한 기록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