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基烈
(1881)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기열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평남 중화군(中和郡) 상원(祥原) 신읍(新邑)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1일 평양에서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2일 아침 천도교인을 중심으로 상원 신읍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이때 시위 군중은 경찰관주재소로 몰려가 철거를 요구하였다. 이에 일본 경찰이 군중들을 해산시키려 하자, 군중들은 경찰들을 주재소로 몰아넣고 소지하고 있던 총기와 탄약 등을 빼앗는 동시에 그 곳에 있던 경찰서장을 포박,납치하였다. 이 소식을 접한 평양 경무부(警務部)에서는 장교 이하 보병 12명과 경찰 2명을 현지에 급파하였다. 평양에서 파견된 일본군 등은 시위대로부터 총기와 탄약을 다시 빼앗고, 김기열을 비롯한 시위군중 39명을 검거하였다. 이때 붙잡힌 김기열은 1919년 7월 31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소요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11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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