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基烈
(1882)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기열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23년 8월 6~7명의 독립단(獨立團) 단원과 함께 평안북도 벽동군의 운시(雲時) 경찰주재소를 습격하였다. 김기열은 벽동군의 대안 중국땅인 남만주에 근거지를 둔 독립단 소속의 독립군이었다. 따라서 그는 이 시기 광복군사령부나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와 같은 통합 독립군 단체에 가담하지 않고 원 소속 군단을 계속 유지하면서 활동한 대한독립단 소속이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1919년 4월 성립 당시 복벽주의를 견지했던 대한독립단은 내부 이념의 문제로 1919년 말 민국독립단과 기원독립단으로 나뉘었다. 그리고 1922년 8월에는 남만주 통합독립군 단체인 대한통의부에 합병되기도 하였다. 또 1924년 중반 정의부(正義府) 성립을 위한 통합운동이 일어 날 때는 여기에 참가하기도 한다. 남만주에서 이 같이 여러 번 독립군 단체의 변화 움직임이 있을 때마다 대한독립단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따라서 대한독립단은 이들 통합운동에 군단 구성원 전체가 가담한 것이 아니고 일부는 남아서 꾸준히 독립단이라는 이름을 견지하면서 활동하였던 것이다. 1923년 8월 14일 운시주재소를 습격한 김기열을 비롯한 독립단 대원들은 일본인 순사를 사살하고 주재소 및 창고와 숙사를 전소시키고, 다량의 무기를 획득하였다. 이 유격전으로 말미암아 김기열은 그 해 10월 19일 체포되어 1924년 1월 23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방화·살인·강도 등으로 징역 8년을 선고받고 신의주형무소에 복역 중 3년 11개월만에 가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09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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