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祺重
(1870) ~ 1910-03-18·대한제국
이명·자·호 金希仲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기중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전북 남원(南原) 사람이다. 1907년 9월 전북 등지에서 활동한 의병장 양인숙(楊仁淑)의 부하가 되어 전북 남원군 견소곡면(見所谷面) 선암(仙岩) 이장 김영보(金永甫)의 집에서 군자금을 모집하고 이듬해인 1908년 9월 8일에는 임실군 덕치면(德峙面) 암리(岩里)에서 이공영(李公榮)·장석봉(張石奉) 등과 함께 한국인 순사 박경홍(朴敬弘)을 처단 응징하고 동변 일구지리(日九池里) 신정노(申正老)의 집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1909년 11월 일경에 붙잡혔다. 그후 동년 11월 22일 광주지방재판소에서 소위 강도죄로 교수형을 선고받고 공소하였으나 1910년 1월 18일 대구공소원에서 기각, 동년 2월 25일 고등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되어, 동년 3월 18일 대구감옥에서 교수형이 집행되어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1991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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