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基昌
1872-07-02 ~ 1950-09-02·일제강점기
이명·자·호 金文玉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기창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평북 의주(義州) 사람이다. 신민회원(新民會員)으로 활동하였고, 임시정부의 선언서에 민족대표로 서명하였다. 또 흥사단원(興士團員)으로 북경(北京)에서 민족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김기창은 1908년 신민회(新民會) 의주지회(義州支會)에서 백용석(白用錫)의 뒤를 이어 반장으로 활동하였다. 그리고 최시준·고일청 등과 함께 사찰(司察)로도 활동하였다. 그러던 중 1911년 소위 105인 사건으로 검거되어 신문을 받고 풀려나기도 했다. 1914년 경에 중국으로 망명 1919년 10월 31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선언서에 민족대표로 서명하였다. 이후 그는 북경으로 이동하여 기독교의 목사로 흥사단(興士團)에 가입하고, 안창호(安昌浩) 등과 연계하여 활동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3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2003
건국포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본관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습니다
이 인물의 본관을 직접 기재한 기록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