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大福
(1879)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대복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함남 고원군(高原郡) 내면(內面) 가평리(加平里) 사람이다. 1919년 3월 중순 기독교 장로파 신자인 유관흥(劉寬興)은 고원읍에 시장이 열리는 3월 19일을 기하여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계획하고, 태극기를 300매를 제작하였다. 그리고 유관흥은 3월 19일 고원군 내면 석연리(石淵里)의 덕지시장(德池市場)에서 군중에게 “금일 기회에 조선은 독립해야 한다”는 취지로 연설을 하고 태극기를 나누어주고,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 때 김대복은 유관흥의 독립연설에 찬동하여 유관흥이 나누어 준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20~30명의 군중과 시위를 전개하였다. 시위 후 체포된 김대복은 1919년 4월 18일 함흥지방법원 원산지청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고, 1919년 5월 1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7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07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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