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德順
1901-08-08 ~ 1984-06-09·현대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덕순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9년 3월 10일 전남 광주군(光州郡) 광주면(光州面)의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3월 6일 김복현(金福鉉), 김강(金剛), 서정희(徐廷禧) 등은 숭일학교(崇一學校) 교사 최병준(崔丙浚), 수피아여학교(須彼亞女學校) 교사 박애순(朴愛順) 등과 3월 10일 광주 장날을 이용하여 독립만세시위를 결행하기로 계획하고 독립선언서를 인쇄하는 등 사전 준비를 하였다. 3월 10일 오후 3시경 광주교(光州橋) 아래 강둑 소시장에 1,000여 명의 군중이 모여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불렀다. 양림동(楊林洞) 방면에서는 기독교인, 숭일학교, 수피아여학교 학생들이 광주천(光州川)을 따라 내려왔고 서문거리로 많은 시민들이 몰려오고 농업학교 학생들과 군중은 북문 방면에서 모여들었다. 또 지산면(芝山面) 쪽에서는 수백 명의 농민이 달려왔다. 이렇게 모여드는 군중을 상대로 숭일·수피아여학교 학생들이 태극기를 나누어 주었고, 시위군중은 태극기를 휘날리고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장을 출발하였다. 이들은 서문통(西門通)을 지나 우편국을 돌아 본정통(本町通)을 행진하는 등 광주 시내의 중요한 거리를 누비며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시위에 참여하였던 수피아여학교 학생 김덕순은 체포되어 1919년 4월 30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4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8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08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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