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德濟
1893-06-04 ~ 1915-09-30·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덕제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강원도 원주(原州) 출신이다. 일찍이 군문에 들어가 육군 정위(正尉)로서 1907년 군대 해산 당시 원주 진위대(鎭衛隊) 대대장 대리로서 근무하고 있었다. 1907년 8월 2일 서울 군부(軍部)로부터의 전명(電命)에 따라 대대장 홍유형(洪裕馨)이 상경하였다. 그것은 군대해산에 따른 제반 조처에 대한 지시를 받기 위한 것이었다. 이미 군대해산에 따른 소식에 접한 바 있던 김덕제는 특무정교(特務正校) 민긍호(閔肯鎬)와 더불어 비밀리에 거사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할 것을 모의하고 동지와 대중 규합에 힘쓰는 한편 총기 탄약을 분배하여 무장 봉기하였다. 8월 3일 부근의 일본 헌병분견소를 습격하고 부하 장졸을 모두 의병으로 조직하였다. 8월 5일 충주 수비대장 이궁(二宮) 소위가 부하 19명을 인솔하고 원주방면으로 들어가려는 것을 적발하고 2시간 동안 교전하여 적을 물리쳤다. 이 급보에 접한 서울의 일군 조선주차 군사령관은 보병 47연대 제3대대의 2개 중대가 기관총 4정으로 무장하고 공병 1개 소대를 대동시켜서 원주로 급파하였다. 한편, 적이 원주성을 공격하려 한다는 정보를 접하고 의진은 공성(空城)작전을 전개하여 인명의 피해를 줄이고자 하였다. 김덕제는 전 의진을 2부대로 나누어 자신이 1부대를 이끌고 평창(平昌) 강릉(江陵) 방면으로 진출하여 양양(襄陽) 간성(杆城) 고성(高城) 통천(通川) 흡곡(歙谷)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한편 민긍호는 나머지 병력을 이끌고 제천(堤川) 충주(忠州) 죽산(竹山) 장호원(長湖院) 여주(驪州) 홍천(洪川) 등지에서 활약하게 되었다. 김덕제는 강원도 일대의 지방 의병들과 합류하여 광범위하고 효과적인 의병활동을 전개하여 일본수비대, 헌병 분파소, 경찰관 주재소, 군아 등을 습격하고 일본 관헌들을 사살하였다. 아울러 조선인으로서 일본인의 주구가 되어 의병운동에 저해 요소이었던 일진회원을 비롯한 친일파들을 철저히 수색하여 사살하였다. 이들에 대한 일본 토벌대로서 보병 150연대의 2중대와 51연대 1중대가 기관총 2자루로 무장하고 출동하였으나 이들의 활약을 저지시킬 수는 없었다. 강원도 동해안 쪽으로 진출한 김덕제는 그곳 의병들과 합세하여 3천 명의 대부대를 형성하였으며, 그 해 8월 14일 평창(平昌) 진부(珍富)를 점령하고 우편국원 2명을 사살하였으며, 각부(脚夫, 심부름꾼) 1명을 체포하여 격문을 사방으로 살포케 함으로써 강원도 평안도 일대로부터 많은 의병을 영입시킬 수 있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1962
독립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본관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습니다
이 인물의 본관을 직접 기재한 기록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