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道彬
1893-07-29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도빈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만주에서 광복단(光復團)에 소속되어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다 일경(日警)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광복단은 1920년 4월 길림성(吉林省) 안도현(安圖縣)에서 조직된 무장 독립운동 단체로 초기 단장은 이범윤(李範允)이 추대되었고 대한제국(大韓帝國)의 복벽(復辟)을 주장하였다. 주요 인사는 김성윤(金聖倫),김성극(金聖極) 등이었고 약 300명의 단원으로 편성되었으며 무기는 장총 150정과 권총 200정을 보유하였다. 군사 활동으로는 일제 기관의 파괴와 일제 경찰 사살 등의 전과를 올렸으며, 청산리전투(靑山里戰鬪)에도 참가하였다. 김도빈은 황해도 수안군(遂安郡) 공포면(公浦面) 방화리(芳花里) 출신이며, 1921년 11월 함남 단천(端川)에서 광복단 문부부장(文簿部長)으로 활동하였다. 동년(同年) 12월 단천군(端川郡) 수하면(水下面) 중평리(仲坪里)에 진출하여 일경(日警)과의 교전(交戰) 중에 체포되었다. 함흥지방법원(咸興地方法院)에서 소위 제령(制令) 제7호 위반 등으로 징역 10년을 받았고, 청진형무소(淸津刑務所)에서 복역(服役) 중 1923년 탈옥하다가 체포되어 징역 2년이 가형(加刑)되었다. 1931년 다시 체포되어 징역 4년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11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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