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道汝
(1867) ~ 1917-02-04·대한제국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도여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노령 연해주에서 독립운동 지도자로 활약하였다. 1911년 노령 블라디보스톡에서 이상설(李相卨)·이종호(李鍾浩) 등과 함께 권업회(勸業會)를 조직하고 의원, 총무를 거쳐 회장에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권업회의 목적과 이념은 시베리아 한인사회의 이익을 증진시키는 권업(경제)문제와 항일운동을 강력히 추진하는 항일(정치)명제를 결부시키는 전술을 취하면서 조국독립을 달성하고자 하는데 있었다. 권업회에서는 이러한 목적과 이념을 실천해 나가기 위해서 교육부·실업부·경용부·종교부·선전부·검사부·통신부·응접부·기록부·사찰부·구제부 등을 두었으며, 1911년 12월 19일 창립이후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 「권업신문(勸業新聞)」의 간행, 교육진흥활동, 한인의 자치활동, 토지조차와 귀화 등을 들 수 있다. 김도여는 1914년에 1월 5일(러시아력) 권업회종람소에서 열린 총회에서 신한촌 거류민회의 회장에 선출되어 신한촌 동포들을 위하여 노력하였다. 또한 1916년 12월에는 연해주에서 경애학교(敬愛學校) 교장으로 일하면서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이 학교의 학생수는 총 57명이며, 수업교과목은 조선지리·산술·생리·작문·병식체조·창가·수신 등이었다. 이처럼 그는 러시아 연해주 지역 동포사회의 지도자로 활동하던 중 1917년 서거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9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1999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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