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東赫
1901-11-15 ~ 1948-09-14·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동혁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김동혁은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배재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교우 임창준(林昌俊)에게서 독립선언서 6매를 받아 남대문 안의 민가에 배포하고, 3월 2일 학생 허신(許信)에게서 <조선독립신문> 제2호 10부를 받아 낙원동 부근의 민가에 배포하였다. 그리고 3월 5일 다시 허신으로부터 <조선독립신문> 제3호 7∼8매를 받아 낙원동 부근의 민가에 배포하며 시위를 선도하다 체포되었다. 1919년 11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출판·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출옥 후, 김동혁은 1923년 1월 조선물산장려회의 조사부 상무이사, 1929년 8월 신간회(新幹會)의 회보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조국 독립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8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08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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