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斗一
1875-11-29 ~ 미상·일제강점기
이명·자·호 金致萬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두일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김두일은 북간도를 무대로 독립운동을 펼친 야단(野團)의 단원으로 1920년 5월 일제의 밀정 이남율(李南律)을 처단하였다. 북간도 연길현(延吉縣) 동불사(銅佛寺)에 본부를 둔 야단은 1919년 3·1운동 직후 설립되었다. 군사훈련을 받은 청년단원이 약 2만 명에 달한다는 일제의 보고 문서가 있으나, 그 신빙성에 대해서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수천 벌의 독립군복을 준비한 단체라는 일제의 보고 문서도 있어 항일무장투쟁을 치밀하게 준비한 독립군단이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북간도 화룡현(和龍縣) 명신사(明信社) 이도구(二道溝)에 거주하던 김두일은 1920년 46세의 장년의 몸으로 야단에 가입하여 경호원의 직책을 맡았다. 그 해 5월 함북 무산에서 사진관을 경영하던 밀정 이남율이 만주 독립군 및 배일한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화룡현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 왔다. 이에 김두일은 같은 야단의 단원인 장봉학(張鳳鶴)·마정덕(馬正德) 등 두 사람과 협의해 그를 처단하였다. 그러나 김두일은 독립군을 괴롭힌 밀정을 처단했다는 이유로 일제에 체포되어 청진지방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 후 징역 12년 6월 7일로 감형되어 1935년 11월 23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09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본관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습니다
이 인물의 본관을 직접 기재한 기록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