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斗鎭
1887-10-21 ~ 1944-01-25·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두진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북 안동(安東) 사람이다. 그는 1919년 예안면 천전리(禮安面 川前里)에서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으며 제1차 예안장터 의거에 참여하였다. 3월 17일 거사 당일 주동인물의 선창에 따라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하는 도중 주동인물인 면서기 이하 20여 명이 붙잡히자 격분하여 군중과 더불어 예안 경찰주재소로 몰려가 구금자의 석방을 요구하였다. 또한 김형진(金衡鎭) 등과 만세시위를 주동하여 수백 명의 군중들과 함께 주재소를 포위하고 투석으로 주재소의 유리창과 문을 파손하였다. 그러나 안동으로부터 수많은 일본군 수비대가 출동하였기 때문에 주동인물 25명과 함께 이날 6시경 일경에 붙잡혔다. 그는 이해 5월 3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징역 2년 6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1990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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