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斗爀
1908-03-11 ~ 1995-08-07·현대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두혁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평안남도 대동(大同) 사람이다. 1930년 평양의 숭실(崇實)전문학교를 졸업하고, 1935년 9월에 대동군 고평면 송산리의 자기 농장에 농촌청년을 위한 송산고등농사학원을 설립하여 민족의식 고취에 기여하였다. 1937년 동경(東京)으로 건너가 동경농업대학에 다니면서 김태훈(金泰薰)·김운하(金雲夏) 등과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농촌계몽을 통한 민족의식 고양방안을 협의하였다. 동년 11월경 이들은 조직의 확대 강화를 위해서 김운하는 농대 조선인 학생의 계우회(鷄友會)·김태훈은 동경 각 대학의 조선인학우회, 그리고 그는 국내를 담당하여 활동하기로 하였으며, 그는 1938년 3월 동경농대를 졸업하고 귀국하였다. 그는 송산고등농사학원을 중심으로 송산미풍회(松山美風會)를 조직하여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 저축조합·양계조합·아동교육조합 등을 통하여 일제의 금융조합에 대항하는 방안을 모색하였다. 그리고 동경의 학생들이 귀국하면 송산학원에서 1주일 내지 10일간씩 합숙하여 실천방안을 협의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동경에서 동지 김운하 등이 일경에 탐지되어 붙잡히는 바람에 그도 1940년 7월 평양경찰서에서 구금되어 심한 고문을 받았으며, 1943년 4월 27일 동경공소원에서 징역 2년에 4년간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으나 2년 9개월간의 옥고를 치러야 했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1990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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