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斗煥
1900-05-21 ~ 1932-08-08·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두환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9년 3월 3일 황해도 금천군 구이면(口耳面)에서 만세운동 계획이 드러나 무산되었다. 서천면(西泉面)에서는 시변리(市邉里) 시장에서 천도교인 두 명이 독립선언서를 붙이다 체포되었다. 같은 날 월성면(月城面) 당관리(堂官里)에서도 만세운동 계획이 사전에 드러나 실행되지 못했다. 금천군의 만세운동은 4월부터 본격화하였다. 4월 1일 백마면(白馬面) 용성리(龍城里)에서 80여 명이 모여 독립만세를 부르고 면사무소까지 이동하여 만세운동을 계속하였다. 같은 날 합탄면(合灘面)에서도 약 100명이 모여 만세를 불렀다. 2일 오후 2시에 다시 합탄면 매후리(梅後里)에 약 300명이 집합하여, ‘독립만세’라고 쓴 큰 기를 세우고 만세를 불렀다. 만세운동에 가담하는 인원이 점점 늘자 군중은 기세를 올리며 시위행진에 나섰으나 헌병대의 무력 저지에 의하여 해산되었다. 합탄면 매후리에 거주하던 김두환은 태극기를 그리고 만세를 부르다가 체포되어 1919년 7월 14일 평양복심법원, 1919년 10월 2일 고등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고 평양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2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21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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