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萬大
(1888) ~ 1910-08-30·대한제국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만대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08년 음력 3월부터 9월까지 전북 무장군(茂長郡)에서 이른바 김참봉의진(金參奉義陣)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던 중 순국하였다. 김참봉은 1908~1909년 사이에 주로 전북 무장군에서 활동하였다. 그가 누구인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고창 출신의 김영진(金永鎭)으로 본명은 재화(在華), 참봉을 제수받은 인물로 전해진다. 농업에 종사하던 김만대는 의병에 투신하여, 김참봉의진에서 군자금 모집 임무를 주로 맡았다. 1908년 음력 3월 김참봉 등 약 40명의 의병과 함께 전북 무장군 심원면(心元面) 월산리(月山里)의 민가에 들어가 엽전 1백 냥을 모집하고, 같은 해 음력 5월에는 무장군 청해면(靑海面) 송산리(松山里), 음력 9월에는 무장군 청해면 안산리(安山里)에서 각각 엽전 1백 냥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09년을 전후하여 전라도 일대의 의병항쟁이 크게 격화되자, 일제는 이른바 남한폭도대토벌작전을 벌여 의병을 진압하기 위한 대규모 군사작전을 펼쳤다. 이 과정에서 일제 군경이 포위망을 좁혀오자 1909년 10월 7일 일본군 보병 제1연대에 자수하였다. 1909년 12월 24일 광주지방재판소(光州地方裁判所) 전주지부(全州支部)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5년을 받고 옥고를 치르다 1910년 8월 30일 옥중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6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16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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