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末度
1924-12-01 ~ 1969-08-04·현대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말도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북 달성(達城) 사람이다. 1941년 6월 일본 경도(京都)의 도촌토공(島村土工)으로 근무중 궁진(宮津)중학을 졸업한 전경원(全京元)을 만나 동지를 규합하였으며, 한국인의 참된 자유, 행복의 쟁취는 조국이 독립하는 길밖에 없다고 믿고 독립운동에 몸을 바칠 것을 결의하였다. 이들은 동년 9월부터 김석용(金碩用)·이상문(李相文)등 수명의 동지를 확보하고 여사군(與謝郡)소재 미륵신사 경내에서 누차 회합하여 상호 민족적 열의를 피력하여 민족정신을 고취하였다. 그리고 민족차별 철폐, 징병제도 반대, 항공병을 지원해서 일본국 기지 폭격, 일본 경찰에 들어가 대대적인 독립운동 전개 등을 목표로 활동하였다. 그러던 중 1944년 6월 일경의 토공숙사 일제 수색으로 전경원의 일기장이 발견됨으로써 동지들이 모두 붙잡혔으며, 그는 장기간의 미결 끝에 1945년 9월 맥아더사령부의 석방명령에 따라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형을 받고 출옥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90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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