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明三
(1869)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명삼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평북 벽동(碧潼)에서 동지 수백 명과 함께 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가 붙잡혀 옥고를 치렀다. 평북 벽동의 만세운동은 천도교 벽동교구에서 가장 먼저 추진하였다. 천도교 벽동 교구에서는 3월 10일 제1세 교조(敎祖) 순도(殉道) 기념일을 기하여 수백 명이 집합하여 기념식을 지낸 뒤, 독립선언서를 뿌리면서 시가지로 나아가자, 일반 시민들과 기독교인들도 합세하여 만세를 부르며 시위행진을 하였다. 이들은 예수교회당 앞에서 만세 3창을 한 뒤 자진 해산하였다. 그후 3월 30일 읍내에서 200여 명의 군중들이 만세시위를 벌이다가 일본군의 출동으로 해산하였고, 31일에는 오전과 오후 2차례에 걸쳐 천도교인들을 중심으로 군중 300여 명이 시가 행진하며 시위를 하다가 일본군의 출동으로 해산하였다. 김명삼은 1919년 3월 만세운동 직후, 신문 등을 통해 파리강화회의와 민족 자결 취지를 접하고, 조만간 조선이 독립될 것이라는 생각에 만세운동에 동참하고자 하였다. 1919년 3월 31일 평북 벽동에서 동지 수백 인과 회합하여 독립만세를 외치다 일제 경찰에 의해 붙잡혔다. 이로 인해 김명삼은 1919년 9월 18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0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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