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明洙
미상 ~ 1924-06-15·조선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명수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김명수는 1919년 연길현(延吉縣)에서 조직된 간도청년회(間島靑年會)에 1920년 1월 28일 가담하여 간사일을 담당하였다. 당시 그와 함께 일한 인물로는 회장 서성권(徐成權), 부회장 강백규(姜伯奎), 총무 김 정(金精), 서기 나 일(羅一)·강승범(姜承範), 간사 최병국(崔炳國)·박 붕(朴鵬), 의사부장 이 광(李光), 재무부장 장원준(張元俊), 편집부장 김규찬(金奎燦) 등을 들 수 있다. 김명수는 간도청년회 간사로서 청년회의 모든 일을 실질적으로 담당하였으며, 노령(露領)에 있는 대한국민의회(大韓國民議會)에서 간도 및 훈춘(琿春)지역에 파견된 선전부와 손잡고 연락업무뿐만 아니라, 재만동포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데 일익을 담당하였다. 한편 김명수는 1924년에 만주지역에서 참의부(參議府) 의용군(義勇軍) 제3중대의 상등병(上等兵)으로 독립운동을 활발히 전개하였으며, 동년 6월 15일에는 국내로 진입하여 일경과 유격전을 전개하였다. 김명수는 일제의 추격을 피해 오후 4시경 평북 희천군(熙川郡) 서면(西面)에 위치한 가라지강(加羅支江)을 건너다 익사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1995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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