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文黃
1892-05-03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문황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평안북도(平安北道) 구성군(龜城郡) 출신으로 1924년 중국 길림성 반석현 세림하(細林河)로 이주했다. 이후 11월까지 정의부(正義府)에서 경영하는 민생학교(民生學校) 교감으로 활동하였다. 1925년 4월 반석지방 검무관(檢務官)으로서 정의부 규정에 따른 검찰재판을 담당했다. 그리하여 같은 해 10월 정의부 지방총감부(地方總監部)가 소재하는 반석(盤石)에서 일제 밀정을 체포하여 사형을 선고하고 정의부 본부로 압송했다. 1927년 음력 10월부터 특별구(特別區) 구장(區長)이 되어 차흥서(車興瑞)와 함께 군자금을 모집했다. 구체적으로 휘남현(輝南縣) 이주 한인 90호로부터 길림성의 화폐인 길림관조(吉林官吊) 2,600여 조(吊)를 모집하여 민생학교 운영비 등으로 사용하였다. 이러한 활동 끝에 1928년 2월 21일 철령일본영사관(鐵嶺日本領事館) 분관 경찰에 체포되었다. 1928년 4월 23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으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정부는 2022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2022
건국포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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