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炳基
1913-09-16 ~ 1957-03-07·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병기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전남 장성(長城) 사람이다. 광주고등보통학교 재학중 1929년 6월에 김상환(金相奐)·김보섭(金普燮) 등 광주고보생 20여명과 함께 무등산에서 항일학생비밀결사인 광주고보 독서회를 조직하였다. 동회는 광주지역의 중심적 항일학생결사였던 성진회(醒進會)가 해체된 후 확대 개편된 '독서회중앙본부'의 하부조직으로 결성되었다. 동회는 전회원을 5개조로 나누어 각각 연구 활동을 하였는데, 그는 이러한 독서회활동을 통하여 항일민족정신을 함양하였다.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독립운동이 일어나자, 그는 김상환(金相奐) 등과 함께 앞장서서 학교 농구실(農具室)을 때려부수고 삽·괭이·목봉(木棒)등을 꺼내어 광주고보 가두시위대열의 선두에 서서 활약하였다. 그후 일경에 붙잡혀 광주학생독립만세시위운동에 대하여 1930년 5월 대구복심법원에서 금고 4월형, 집행유예 5년형을 선고받았다. 또한 독서회 관계에 대해서는 1930년 10월 광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월형을 선고 받고 항소하여 1931년 6월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90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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