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秉烈
(1885)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병렬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김병렬은 충남 천안군(天安郡) 입장면(笠場面)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 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전국에서 독립만세시위가 벌어질 때, 1919년 3월 20일 오전 10시 경 천안군 입장면 양대리(良垈里)시장에서도 사립광명학교(光明學校)의 교사와 민옥석(閔 玉錫) 등 학생 수십명, 그리고 직산금광회사(稷山金鑛會社) 광부인 김병렬 등 주 민 약 70명은 함께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 독립만세를 부르는 시위를 시작했다. 이들은 다시 약 3km 떨어진 하장리(下場里) 소재 입장시장(笠場市場)으로 향하 여 약 600~700 명이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대한 독립만세를 소리높이 외치며 행진을 벌였다. 출동한 천안헌병대와 일대 충돌을 빚어 남자 40명, 여자 10명이 체포되었으나 입장시장에 이르러 약 700명의 군중과 계속 시 위를 벌였다. 시위 후 체포된 김병렬은 4월 28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12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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