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炳三
미상 ~ 1922-01-31·조선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병삼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김병삼은 1920년 9월경 관전현(寬甸縣) 안자구(安子溝)에서 조직된 임시정부 산하의 광복군총영(光復軍總營)에서 활동하였다. 이 단체는 상해 임시정부에 파견되었던 이 탁(李鐸)이 대한청년단연합회(大韓靑年團聯合會)의 간부와 협의하여 임시정부의 독립군영으로서 보다 효율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전투군단을 육성할 목적으로 대한청년단연합회와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 및 한족회(韓族會)를 통합하여 편성한 것이다. 광복군총영의 사령(司令)에는 대한독립단의 조맹선(趙孟善)을 선임하고, 참모장에 이 탁, 경리부장에 조병준(趙秉準), 본영 영장에 오동진(吳東振)이 취임하고, 모든 영원(營員)은 임시정부의 군인 신분으로 활동하였다. 광복군총영에서는 국내에 하부조직인 군영(郡營)·도영(道營) 등을 설치하고자 하였으며, 아울러 국내에 진공하여 활발한 군자금 모집활동과 암살활동을 전개하고자 하였다. 이에 김병삼은 광복군의 암살대원으로 활동하면서 주로 친일파 제거에 앞장서게 되었다. 이처럼 김병삼 등이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자, 국내에서 일경이 급파되어 1922년 1월 31일 동지 이준철(李俊喆)과 함께 만주 임강현(臨江縣) 두도구(頭道溝) 부근 내신각(內新閣)에서 국내의 중강진서(中江鎭署) 웅곡(熊谷)순사 외 3명의 경찰과 교전하여 김병삼은 이준철과 함께 전사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1995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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