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炳成
1910-01-14 ~ 1947-10-13·일제강점기
이명·자·호 龍宮漠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병성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김병성은 1929년 6월 서울에서 중앙청년동맹(中央靑年同盟) 조직선전부 위원에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같은 해 2월 만주에서 고려공산청년회(高麗共産靑年會)의 임시집행부를 조직한 후 입국한 최덕준(崔德俊)은, 서울에서 홍승유(洪承裕)‧전승익(全承翼) 등을 규합하여 고려공산청년회의 재건을 추진하였다. 홍승유는 학생들을 중심으로 조직 확대를 계획하고, 강윤구(姜潤求) 등과 학생으로 구성된 지방 조직을 설립하였다. 김병성은 5월 강민호(姜玟鎬)의 권유로 재건된 고려공산청년회에 가입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활동이 발각되어 같은 해 7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위반 혐의로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후 미결기간 중 1년 8개월의 옥고를 치르고 1931년 3월 9일에 풀려났다. 1934년 11월에는 경상남도 하동군(河東郡)의 자신의 집에서 신만중(愼萬重) 등과 신사회 건설의 방안을 논의하는 등 독립운동을 지속했다. 1935년 김태영(金台榮)이 노동조합을 결성한 사건에 관련되어 체포되었다. 정부는 202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22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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