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炳軾
(1872-12-09)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병식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김병식은 함남 풍산군(豊山郡) 이인면(里仁面) 원포리(院浦里)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맹시정(孟始楨) 등과 함께 독립만세시위를 논의하고 주도하다 체포되어옥고를 치렀다. 천도교인 김병식은 1919년 3월 10일 자택에서 손병희의 주장에 근거하여 3월 14일 독립운동을 일으킬 것을 맹시정 등과 협의 결정하였다. 김병식과 맹시정 등은 3월 14일 하지경리(下地境里)의 호암(虎岩)이라는 곳에서 군중을 모으기 시작했다. 이들은 노완리(老院里) 방면으로부터 오는 많은 군중을 이끌고 풍산 천도교구당으로 갔다. 그 곳에는 이미 교구장인 주병남(朱炳南)과 주의락(朱義洛), 장세급(張世芨) 등 천도교 지도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모여든 군중이 1,000명을 넘었다. 김병식 등 신도들은 교당 안에 들어가 독립을 기원하는 기도를 올린 다음 군중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부르고 태극기를 흔들며 행진을 시작하여 헌병분견소 앞에 이르렀다. 이때 헌병들의 총격으로 군중 2명이 현장에서 순국하고 10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시위는 오후 4시경까지 계속되었다. 시위 후 체포된 김병식은 7월 14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소위 소요·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 벌금 30원을 받았다. 그는 상고하였으나 8월 22일 경성복심법원과 10월 23일 고등법원에서 각각 기각되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2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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