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炳洋
(1884)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병양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9년 음력 7월부터 평남 강동군(江東郡)에서 고응대(高膺大)와 함께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고, 1920년 국민향촌회(國民鄕村會)를 조직하여 활동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김병양은 1919년 음력 7월경 고응대와 함께 김정욱(金鼎昱) 등으로부터 독립자금을 모집하여 상해(上海) 대한민국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에 보냈다. 1920년 10월경에는 고적희(高迪熙)ㆍ이기옥(李基玉) 등과 대한독립단 총무 박승명(朴承明)과 협의하여 국민향촌회를 조직하였다. 국민향촌회는 고적희를 회장, 고응대를 부회장, 이기옥을 회계로 선임한 뒤 회원들에게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하기 위하여 입회금 2환씩을 모집하였다. 그리고 상해에서 발간되던 「독립신문」을 가져다가 회원과 민간에 배부하여 독립정신을 고취하였다. 1920년 11월 17일 평양지방법원에서 이른바 1919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15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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