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炳河
미상 ~ 1936-10-09·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병하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김병하는 조선혁명군 제3중대장으로 남만주의 집안현(輯安縣)·관전현(寬甸縣) 등에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만주에 근거지를 둔 독립운동 단체들은 1927년 이후 항일무장투쟁계의 대동단합을 위한 민족유일당운동을 전개하였다. 그 결과 만주의 모든 독립운동 단체들을 하나로 만드는 통합체는 구성하지 못했으나, 1928년 12월 혁신의회(革新議會)와 1929년 4월 국민부(國民府)를 성립시켰다. 혁신의회는 북만주 지방을 무대로, 국민부는 남만주 지방을 활동무대로 하여 성립된 단체였다. 남만주에 근거지를 가진 국민부는 보다 짜임새 있는 조직체를 구성하기 위해 조선혁명당(朝鮮革命黨)과 그 산하에 조선혁명군을 결성하였다. 이와 같은 과정을 겪으며 탄생한 조선혁명군은 남만주지역의 한인사회를 관할하면서 활발한 무장활동을 펼쳤다. 중국군과 연합해 신빈현 남두령(南陡嶺)전투, 영릉가(永陵街)전투, 청원현(淸原縣)전투 등 대규모 전투를 펼쳤고, 수많은 결사대원들을 국내로 진입시켜 유격전을 펼쳤다. 조선혁명군 제3중대 소대장이었던 김병하는 1936년 6월 초 압록강을 넘어 초산군으로 진입하였다. 부하들과 함께 면협의원(面協議員)인 오시화(吳始化)를 비롯한 3명의 친일파들을 붙잡아 그들의 매국적인 죄를 징벌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10월 9일에는 부하들을 이끌고 평북 벽동경찰서 노장주재소(魯章駐在所)를 습격해 일본인 순사 4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하지만 김병하는 이 전투에서 일경의 반격을 받아 전사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09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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