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炳恒
1897-03-27 ~ 미상·일제강점기
이명·자·호 一毫, 鶴笑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병항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9년 12월 27일 숭의단의 일원으로 성천군 삼덕면(三德面) 문원리(文源里)에서 상하이(上海)에 소재한 대한민국임시정부로 보내기 위해 군자금을 모금하다 체포되었다. 숭의단은 1919년 평안남도 성천군과 순천군(順川郡) 일대를 중심으로 독립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한 항일 비밀결사단체였다. 1926년이 되자 김병항은 정의부 제5중대장 이윤환(李允煥)의 부하로 만주(滿洲) 콴텐현 일대에서 무장 항일투쟁을 지속하였다. 정의부는 경신참변(庚申慘變)과 자유시참변 이후 1924년에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를 중심으로 군정서(軍政署)·광정단(匡正團) 등의 조직이 지린성(吉林省) 류허현(柳河縣)에서 연합하여 조직되었다. 김병항은 만주 일대에서 지속적으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다 체포되었다. 1921년 8월 9일 평양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대정(大正) 8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징역 3년(미결 구류 400일)을 받고 1922년 5월 25일까지 4년 4개월 간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18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8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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