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寶坤
1891-01-16 ~ 1923-07-24·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보곤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상북도 청도(淸道) 사람이다. 1919년 3월 14일의 대성면 유천(大城面 楡川, 現 淸道面) 장날을 이용하여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였다. 그는 당시 대성면 내호동(內湖洞)교회의 조사(助事)로서 평양신학교(平壤神學校)에 입학하기 위하여 3월 2일 평양으로 가다가, 황주역(黃州驛)에서 평양신학교 학생인 이승길(李承吉)을 만나, 그에게서 파리 강화회의 소식과 국내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독립만세시위운동에 대하여 전해듣고, 고향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일으킬 것을 다짐하고 바로 귀향하였다. 이에 그는 3월 13일 집에서 서정기(徐正基)·조경이(趙景伊)·김타관(金他寬)·정술문(鄭述文) 등에게 평양에서 들은 바를 전하고, 내일의 유천 장날을 이용하여 독립만세운동을 일으키자고 제의하여, 그들의 찬성을 얻게 되자 이날 밤 집에서 태극기 24매를 제작하여 서정기·조경윤에게 나누어주는 한편, 밀양 공립보통학교(密陽公立普通學校) 학생들에게도 참가를 권유하는 통지서를 발송하였으나 이 계획이 일경에게 누설되어 3월 14일 유천장터에는 일본 경찰이 삼엄하게 경계를 펴고 있었으며 시위에 참가하려는 군중의 수도 적어 거사는 단행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는 일제에게 체포되었으며, 이해 5월 13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90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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