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福順
1914-07-25 ~ 2007-08-28·현대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복순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29년 전라남도 광주(光州)의 광주공립보통학교(光州公立普通學校)를 졸업하고 같은 해 4월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光州女子高等普通學校)에 입학하였다. 1929년 11월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나자 11월 14일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 기숙사의 학생들이 교정에서 독립가(獨立歌)를 부르며 만세를 외쳤다. 이들은 사감실에 투석하여 유리창을 파괴하는 등 격렬한 시위를 지속했다. 김복순도 이러한 만세시위에 적극 참여했다가 12월 19일 개교하자 무기정학을 당하였다. 1930년 1월 8일에는 학생들이 연기되었던 2학기 기말시험에 백지를 제출하는 백지동맹으로 학생운동을 이어갔다. 광주학생운동으로 2백여 명의 학생들이 검거된 상황에서 시험을 치를 수 없다는 이유였다. 김복순도 이에 동참했다가 1930년 3월 25일 제적 처분을 받았다. 정부는 202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22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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