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鳳律
(1884)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봉률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09년 음력 2월 14일부터 음력 8월 30일까지 전북 순창군(淳昌郡) 일원에서 양인숙의진(梁仁淑義陣) 소속 이국찬(李國贊)의 휘하에서 활동하였다. 김봉률은 양인숙의진의 검찰(檢察) 이국찬의 휘하에서 부군(負軍)으로 활동했다. 동료 10명과 함께 총기 5정을 휴대하고 전북 순창 일원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하던 중, 1909년 10월 26일 전주경찰서(全州警察署) 변장수색대(變裝搜索隊)에 체포되었다. 1909년 11월 22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이른바 폭동죄로 징역 1년을 받고 10개월여의 옥고를 치르던 중, 1910년 대사령(大赦令)에 의해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2015
건국포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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