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鳳燮
1893-10-09 ~ 1932-02-26·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봉섭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20년 음력 8월경 상해의용단(上海義勇團)에 가입하여 평남 대동군(大同郡)ㆍ강동군(江東郡)에서 친일파와 밀정 처단 및 군자금 모집 활동에 참여하였다. 김봉섭은 1920년 음력 8월경 김순록(金淳錄)ㆍ김국록(金國祿)ㆍ김태린(金泰?, 金泰麟)ㆍ왕기서(王基西)ㆍ정석흥(丁錫興) 등과 함께 김봉원(金鳳源)의 권유로 상해의용단에 가입하였다. 1920년 11월 하순부터 상해의용단 본부의 장재부장(掌財部長) 김순일(金淳一) 등과 활동하였다. 1920년 11월 대동군 시족면(柴足面) 운곡리(雲谷里), 1921년 1월 1일 대동군 시족면 운곡리, 1월 27일 강동군 고천면(高泉面) 동서리(東西里)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1921년 1월 30일 강동군 고천면 도덕리(道德里) 김원봉(金元鳳)이 상해의용단의 활동을 탐지하여 경찰서에 보고하는 정황을 포착하고 권총으로 사살하였다. 이 사건으로 강동경찰서에 체포되어 1921년 8월 5일 평양지방법원에서 이른바 1919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 및 가택침입, 강도죄로 징역 10년을 받고 경성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1928년 2월 10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15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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