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山倫
(1919) ~ (1943-04)·일제강점기
이명·자·호 金巴倫, 金巴崙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산륜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38년 10월 10일 중국 무한(武漢)에서 조선민족혁명당(朝鮮民族革命黨)·조선민족전선연맹(朝鮮民族戰線聯盟)·조선청년전위동맹(朝鮮靑年前衛同盟) 등이 중심되어 결성한 조선의용대(朝鮮義勇隊)가 창립되었다. 조선의용대는 중국 각 전선에 분산·배치되어 중국군의 보조임무인 일본군에 대한 정치선전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조선의용대 창립 직후 일본군의 공격으로 무한이 함락되자, 조선의용대 본부는 광서성(廣西省) 계림(桂林)으로 이동하였고, 조선의용대 제1구대는 호남성(湖南省)으로, 조선의용대 제2구대는 호북성(湖北省)으로 작전지역을 이동하였다. 조선의용대는 작전지역 이동후 진지선전대(陣地宣傳隊)와 유격선전대(遊擊宣傳隊)로 나누어 일본군을 상대로 반전 선동연설을 하거나 반전전단을 살포하였다. 이때 그는 조선의용대에 참가하여 반일 선전활동에 종사하였다. 1941년 7월 조선의용대 화북지대(華北支隊)가 건립된 데 이어 1942년 7월 중순 태항산[太行山]에서 개최된 화북조선청년연합회(華北朝鮮靑年聯合會) 제2차 대표대회에서 화북조선청년연합회를 화북조선독립동맹(華北朝鮮獨立同盟)으로 개칭하고, 조선의용대 화북지대를 조선의용군(朝鮮義勇軍) 화북지대(華北支隊)로 개칭하여 화북조선독립동맹 산하로 배속하였다. 이에 따라 그는 조선의용군 화북지대 제2대원으로 소속되었으며, 진서북(晉西北) 지역을 중심으로 1943년 봄 돌격대를 조직하고 무장선전활동을 전개하였다. 이 돌격대는 중국공산당 팔로군(八路軍) 조직의 하나로 민중들의 항일의식을 고취하고 민중의 군입대를 촉진시키는 무장선전대로서, 일본군 진지 앞으로 다가가 다섯 차례의 직접 선동을 하였고, 적군에게 반전내용이 담긴 11통의 편지를 썼으며, 일본군이 지나다니는 지점에 표어 49장, 기타 선전물 710장을 부착하였다. 때로는 중국인 유격대와 적의 거점을 공격하여 식량을 보급해 오기도 하였다. 이러한 활동과정에서 그는 1943년 4월 진서북군구(晉西北軍區)에서 조선의용군의 반소탕작전(反掃蕩作戰)에 참여하여 임무를 수행하던 중 일본군과 조우하여 전투 중 전사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01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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