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相培
미상 ~ 1921-02-02·조선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상배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21년 만주에서 독립당원으로 활동한 인물이다. 1919년 3·1운동 이후 만주지역에서는 수많은 독립운동단체들이 조직되었으며, 특히 서간도 지역에서 조직된 대표적인 단체로는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와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을 들 수 있다. 이들 단체들은 서간도 지역의 집안현(輯安縣)·유하현(柳河縣)·통화현(通化縣) 등지를 중심으로 군자금 모집, 친일파 처단, 그리고 국내진공작전 등을 활발히 전개하였다. 이에 국내치안에 두려움을 느낀 일제는 1920년 훈춘사건(琿春事件)을 조작하여 간도로 출병, 독립운동단체를 공격하는 한편 일반 양민들을 대량학살하였다. 이에 독립운동가들 가운데 일부는 귀순하기도 하였으며, 일부는 깊은 산 속으로, 일부는 러시아령으로 피신하기도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시기인 1921년 2월 2일 김상배는 만주에서 독립당원으로 활동하다가 동지 안중석(安重錫)·백학원(白學元) 외 4명과 함께 안동현(安東縣) 구연성(九連城) 부근 삼도만(三道灣) 위자구(葦子溝)에 있는 소(蘇)씨 집에서 유숙하였다. 그러한 사실이 안동현 일경에게 알려져 일경의 습격을 받게 되었는데, 일경은 이들을 체포하기 위하여 7명의 일경이 평북 의주까지 가서 5명의 응원을 얻어 12명의 순사가 한 밤중에 집을 포위하고 방화하였다. 이에 김상배 등은 일경과 교전하여 경부(警部) 강전(岡田)을 사살하는 한편 순사 1명에게 중상을 입히는 전과를 올렸으나, 계속되는 전투에 중과부적으로 일행 모두 전사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1995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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