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商俊
1885-08-27 ~ 1944-12-24·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상준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충남 예산(禮山) 사람이다. 국권상실 이후 1916년 김한종(金漢鍾)·김경태(金敬泰) 등과 함께 독립운동의 방안을 논의하여 1917년 말까지 총독부를 습격할 것을 결의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개별적인 투쟁보다는 조직적인 활동이 필요함을 인식하고 비밀결사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에 가입하였다. 대한광복회는 1915년 조선국권회복단(朝鮮國權恢復團)의 일부 인사들과 풍기광복단(豊基光復團)이 제휴하여 결성한 혁명단체로서, 국내에서 군자금을 조달하여 만주의 독립군기지에서 혁명군을 양성하고 국내에 확보한 혁명기지를 거점으로 적시에 봉기하여 독립을 쟁취할 것을 계획하였다. 이때 행동지침은 비밀·폭동·암살·명령의 4대 강령이었고 각처에 곡물상을 설립하여 혁명기지로 삼는 한편, 혁명군을 군자금 조달, 독립군 및 혁명군의 기지건설, 의협투쟁으로서의 총독처단 계획 및 친일부호 처단 등으로 추진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김한종·이재덕(李在德)과 함께 광복회의 고시문을 작성하여 지방 자산가들에게 우송하였으며 또한 김재창(金在昶)·정태복(鄭泰復)과 더불어 정인교(鄭仁敎)를 비롯한 지방 자산가들로부터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이러한 활동을 펴던 중 그는 1917년 일경에 붙잡혀 징역 4년형을 선고받고 1년여의 옥고를 치른 후 출옥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90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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