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尙鎭
미상 ~ (1924)·조선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상진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만주 서간도지역에서 독립군으로 활약하였다. 3·1운동 이후 만주지역을 중심으로 무장투쟁론이 적극 대두되었으며, 재만 동포들의 절대적인 지지 하에 70여 개의 독립군부대가 편성되었다. 이들은 압록강과 두만강을 넘어 국내진공작전을 전개, 일본군 국경수비대를 교란시키는 무장활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청산리전투와 봉오동전투에서 만주에 진출한 일본군을 격퇴하였다. 그러나 이 두 전투에서 크게 패한 일제의 대대적인 탄압에 밀려 독립군은 소련·연해주 등 각지를 전전하게 되었다. 자유시참변 이후 독립군 단체들은 만주로 돌아와 정의부, 참의부, 신민부 등을 조직하여 항일전쟁을 지속적으로 수행하였다. 김상진은 이러한 시기인 1924년 중국 봉천성(奉天省) 통화현(通化縣) 강산두도구(岡山頭道溝)에서 독립군으로 활동 중, 중국 보갑대(保甲隊)와 무기 매매를 교섭하는 임무를 맡아 수행하였다. 그러던 중 중국 보갑장(保甲長) 주기산(周岐山)의 무리한 요구에 항거하다가 기습을 받아 피살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9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1999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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