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石九
1910-10-23 ~ 미상·현대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석구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27년 4월 교토사립동지사중학교(京都私立同志社中學校) 2학년에 재학하다가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 2학년으로 전학했다. 4학년 때인 1929년 7월 대구고등보통학교 학생을 중심으로 대구지역 중등학교 학생을 결집시킨 대구학생비밀결사 사건에 연루돼 퇴학했다. 이후 9월 교토사립성봉중학교(京都私立聖峰中學校) 4학년에 입학해 1931년 3월 졸업했다. 1931년 6월 김일식(金一植) 등과 함께 대구 근교의 공동묘지에 모여 공산주의를 연구하기 위한 사회과학연구회를 조직했다. 또한 학생 포섭 활동을 해 한순(韓錞), 정수범(鄭洙範) 등이 가입했다. 이들은 11월까지 대구 교외의 수성교(壽城橋) 부근 천변 등의 장소에 모여 공산주의를 연구하고 토의했다. 일제는 사회과학연구회를 ‘대구의 4대 비밀결사 사건’의 하나로 평가하며 김석구를 비롯한 관련자들을 대대적으로 체포했다. 김석구는 1932년 12월 2일 대구지방법원(大邱地方法院)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으로 징역 1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정부는 2020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2020
건국포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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