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碩順
1882-06-28 ~ 1962-03-08·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석순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7년 4월 전남 해남군(海南郡)과 장흥군(長興郡) 일대에서 조선독립의군(朝鮮獨立義軍)에 호응하여 동지와 군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김석순은 스승인 송학규(宋學奎)가 정을용(鄭乙龍)과 자하도(紫霞島)에서 조선독립의군을 일으키기 위하여 의병을 준비 중인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군자금이 결핍하였음을 듣고 개탄하며, "조선인 가운데 일본의 기반(羈絆)을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 자 없다"고 호소하면서 동지를 모으고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김기현(金基賢)은 김석순 등의 군자금 모집 계획에 찬성하여, 1913년 음력 2월부터 1916년 음력 7월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군자금과 군량으로 198원 80전과 쌀 1석 8두를 지원하였다. 1917년 4월 10일 장흥헌병분대(長興憲兵分隊)에 체포된 뒤, 같은 해 4월 23일 광주지방법원 장흥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 및 사기죄로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5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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