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錫泰
1874-05-21 ~ 1937-05-19·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석태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함남 갑산(甲山) 사람이다. 그는 1920년 8월 박형렬(朴亨烈)·이치용(李致龍)·박태화(朴泰華) 등과 함께 광복단(光復團) 갑산분단(甲山分團)을 조직하고 부단장으로 활약했다. 광복단은 1920년 김성극(金星極)·홍두식(洪斗植) 등이 주도·조직한 무장투쟁단체로서 만주 안도현(安圖縣)에 본부를 두고 만주와 국내 등지에 분단을 설치하여 군자금 모집 및 선전문 배포활동을 폈다. 그리하여 만주와 국내를 왕복하며 활동하던 그는 1921년 4월 김좌봉(金佐鳳)·김내원(金來源)·이신재(李愼在) 등 120여명의 동지들과 함께 일경에 붙잡혀 고초를 겪었으며 동년 10월 장백현(長白縣)에 광복단의 지원조직인 농민회(農民會)를 결성하여 광복단의 활동에 필요한 군자금 및 식량 제공에 힘을 쏟았다. 그러던 중 1921년 만주에서 붙잡힌 이후 국내로 이송되어 일경의 감시를 받으며 여생을 지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91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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