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善斗
(1876)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선두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9년 3월 1일 평양 숭덕학교(崇德學校)에서 개최된 독립선언식에서 사회를 보고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으며 태극기 수백 개와 독립선언서를 배포하였다. 평양지역의 기독교 인사들은 1919년 2월 선우혁(鮮于爀) 등과 연락을 하며 독립운동을 계획 중에 있었다. 마침 천도교 측에서 합동운동을 교섭해 와 평양에서도 1919년 3월 1일 조선독립선언식을 협동하여 거행하기로 결정하였다. 3월 1일 숭덕학교 교정에서 광무황제 봉도식(奉悼式)이 열린 후 독립선포식을 거행할 때 김선두는 곽건응(郭權應) 등에게 지시하여 태극기 수백 개를 배포하게 하고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다. 사람들은 일제히 독립만세를 부르고 거리로 진출하였다. 상인들도 철시하고 시위행진에 가담하였다. 평양경찰서 앞에서 천도교구당과 남산현교회(南山峴敎會) 등에서 행진해 온 시위대가 합세하여 도청, 재판소, 평양역 광장, 평양부청, 평양형무소 등 시가지를 돌며 독립만세를 외쳤다. 오후 7시경에는 시위대는 평양경찰서 앞에서 경찰과 충돌하였다. 이 투쟁 가운데 많은 사람이 부상당하고 수백 명이 검거되었다. 밤에는 학생들이 다시 행진하며 만세를 부르는 등 만세운동의 열기는 계속되었다. 김선두는 체포되어 1919년 9월 19일 경성복심법원, 1919년 10월 20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2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7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07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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