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善生
1904-07-21 ~ 1935-12-31·일제강점기
이명·자·호 金良俊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선생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28년 함북 명천군(明川郡) 명천청년동맹(明川靑年同盟)을 중심으로 청년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는 1928년 1월 명천청년동맹 아간지부(阿間支部) 용암동반(龍岩洞班) 준비위원으로 활동하다가 표어사용문제로 일경에 체포되어 29일간 구류되었다. 당시 명천청년동맹은 신간회 명천지회와 함께 이 지역 대중운동을 주도했으며, 1928년 3월에는 정기대회에서 농민조합 설치를 결의하는 등 항일투쟁에 앞장섰다. 일제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항일의식을 불태우던 그는 동년 조선청년총동맹(朝鮮靑年總同盟) 명천군동맹 정기대회에서 일제의 양잠 및 화전민정책을 비판하는 연설을 하다가 체포되어 2년 5개월여의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05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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